<직지 : 아모르 마네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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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고등학교때 김진명 작가의 책을 읽으며 지루한 시간을 달래곤 했다. 최근에 나온 책을 보고 궁금함에 집어들어 사서 읽었고 후기를 남겨 보고자 한다. 사실 김진명 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전작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이다. 작중 이휘소 박사가 핵개발 때문에 박정희를 만났나거나 핵 개발 때문에 암살 당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근거가 더 많다고 한다. 게다가 이휘소 박사는 '핵 물리학자'가 아닌 '소립자 물리학자'이며 공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핵 개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 하는게 내 의견이다. 아무튼, 김진명 작가는 사실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기에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직지는 한 교수의 죽음을 파헤치는 기자의 이야기다. 구텐베르크가 고려의 금속활자 기술을 바탕으로 인쇄 기술을 개발했다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 사실을 증명하려다 한 교수가 살해당하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파헤치는 내용의 소설이다. 첫 1권은 '정말 금속활자 기술이 구텐베르크에게 전해졌는가?'하는 의문과 그를 뒷받침 하는 근거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럴듯한 주장과 근거들이 꽤 많이 나온다. 그 중 하나로 현미경을 통해 직지의 인쇄본과 구텐베르크의 인쇄본인 '42행 성서'의 인쇄본을 비교하는 내용이 나온다. 고려 시대에 사용하던 '주물사 제조법'은 글자가 찍힌 모래에 금속을 굳혀 인쇄본에 모래 자국이 남는다. 구텐베르크의 활자는 글자가 양각된 금속을 무른 금속위에 놓고 찍어 형틀을 만들기 때문에 인쇄 표면이 매끈하다고 한다. 파리의 한 교수가 현미경을 통해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했다고 하기에 내용을 찾아보니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어 있었다 (1분 55초 부근). 물론 이것 만으로 구텐베르크가 직지를 참조했다고 믿긴 어렵지만 이런 연구를 하는 사람도 있고, 과학적이라 신기하긴 했다.
근데 여기서 오류가 하나 있다. 책 본문의 내용을 보면 '3D 전자현미경'으로 직지와 42행 성서의 내용을 비교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 때문에 위의 동영상을 찾는데 조금 오래 걸렸다. 사실 전자 현미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쉽지 않다. 수분이 없고, 금속이어야 하며, 너무 큰 것은 사용 불가능하다. 금속이 아닌 것을 전자현미경으로 찍으려면 금속으로 코팅을 해야 한다. 또, 책의 한 페이지를 전자현미경으로 찍기에는 크기 때문에 작게 자른 조각을 사용해야 하는데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료인 직지와 42행 성서를 어떻게 현미경으로 찍을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나는 공대생이고 전자 현미경도 써 보았기 때문에 촬영 조건이 한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드는 의문이었다. 근데, 동영상 4분 13초 부근을 보면 분석에 사용한 현미경이 나온다. 보니까 광학 렌즈가 달려 있었다. 분석에 사용된 현미경은 '전자'현미경이 아니라 '광학'현미경이다. 아마 공초점 현미경(confocal microscopy)이나 간섭 현미경을 사용한 듯 싶다.
2권 부터는 거의 90%의 내용이 소설인 것으로 보인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소를 개업한 시기가 세종대왕님의 훈민정음 반포 시기와 몇 년 차이나지 않는데 이를 엮어서 나중엔 반도체 이야기 까지 소설로 담아내었다. 사실 세종대왕님을 매우 존경하며 우리나라 기술력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너무 비약적으로 금속활자, 한글 그리고 반도체를 엮은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나름 재밌는 관점이기도 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술을 퍼트린 시기가 세종대왕님이 한글을 퍼트린 시기가 비슷하단 점과 위의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직지가 원조 기술이라는 주장을 한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무조건적으로 믿기는 힘들지만 작가의 창의력은 독창적인 것 같다.
그 당시의 중세나 조선이나 지식의 독점은 비슷한 것 같다. 지식이 넘쳐나고, 그 안의 논리와 창의성이 더 중요한 현 시대에 글자 자체의 중요성은 옛날에 비해 많이 줄었을 것이다. 그래서 프로그래밍 언어 같은 경우는 무료로 배포하기까지 하니 내가 얼마나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지 실감이 간다. 책도 마음껏 읽을 수 있어 행복하다. 사실 구텐베르크가 고려의 금속활자 기술을 참고 했는지 안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무언가를 최초로 해냈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다. 하지만, 한글을 만들어내고 배포한 세종대왕님 처럼 지식을 배포한 구텐베르크의 업적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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